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카르도 무티 (문단 편집) == 생애 ==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에서 수학하여 지휘와 작곡을 배웠으나 지휘자로서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음악원 졸업 전 지휘자로 데뷔했고, 귀도 칸텔리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1969년 피렌체 5월 음악제의 음악감독 직을 맡았고, 이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베르디의 '돈 파스콸레'로 데뷔하였다.[* 갑자기 이른 새벽 일면식도 없던 카라얀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출연 제의를 하여 깜짝 놀랐다고 한다.] 1970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아이다(오페라)|아이다]]가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고, 1973년 마침내 [[오토 클렘페러]]의 후임으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되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유진 오르만디]]의 눈에 띄어 1975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가 되었고, 1980년에는 유진 오먼디의 뒤를 이어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1986년에는 아바도의 후임으로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지휘자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2005년 라 스칼라 극장 단원 및 경영진과의 불화로 19년간 수행해온 라 스칼라 극장 음악감독직에서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된다. 90년대에는 [[세이지 오자와]], [[주빈 메타]] 등과 함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가 되었고, 빈 필의 명예 단원으로 추대되었다. 2000년대 후반 들어 라 스칼라 극장과의 관계가 멀어진 대신, 빈 필하모닉과의 유대를 더욱 깊이 하고 있다. 2020년대인 지금에도 크리스티안 틸레만, 프란츠 뵐저-뫼스트 등과 더불어 빈 필하모닉의 정기연주회와 잘츠부르크 음악축제에 매년 초빙되는 지휘자로 활약 중이다. 2010년부터는 하이팅크의 후임으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았으며,[* 하이팅크는 바렌보임이나 무티 등과 달리 고령 등의 이유로 시카고 심포니에서 음악감독 대신 수석지휘자직을 수행했다. 그래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홈페이지에 따르면 전임 음악감독들을 소개하는 게시물에서 하이팅크는 빠져있다. 하지만 바렌보임과 무티의 재임기 사이의 공백 5년간 시카고 심포니의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수장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2022/2023년 시즌을 끝으로 13년간 수행해온 음악감독직을 내려놓고, 2023년 하반기부터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역사상 첫 명예 음악감독(Music Director Emeritus)으로 활동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